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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도 좋아, 가끔은 Travel Abroad

그라나다 여행

by 응댕이를쳐라옹 2019. 11. 8.

 

[스페인포르투갈패키지여행 #11] 그라나다 여행을 수놓는 알함브라 궁전

 

 

론다에서 2시간 30분을 달려 그라나다에 저녁 무렵 도착했다. 이곳 출신이신 버스 기사님께서는 이곳 일정을 마치고 퇴근하신다고 했다. 친절한 마누엘 기사님을 보내고, 그라나다 여행의 진수인 알함브라의 야경을 제대로 보기 위해 우리 일행은 알바이신 지구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산니콜라스 전망대로 향했다.

 

 

 

산니콜라스 전망대

★★★★★ · 전망대 · Calle Del Agave, 1A

www.google.com

 

그라나다 산니콜라스 전망대에는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시각인데도 일찍부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몰려든 그라나다 여행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뷰 포인트인 담장 주변에 몰린 인파들 사이사이로 눈치껏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거의 그룹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갑자기 한쪽 자리가 빌 때가 있다. 그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 팁이라면 팁.

 

 

혼잡도가 높은 전망대 끝 지점 뒤편으로는 꽤 한적한 편. 알함브라 궁전 사진을 찍었다면 조용하게 뒤로 물러나 주변 풍광을 감상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조깅을 하는 주민 분들은 물론, 갖가지 저렴한 액세서리를 파는 상인도 있었다.  

 

 

산니콜라스 전망대보다 조금 아래쪽에 위치한 뷰 포인트도 꽤 괜찮은데, 그라나다 여행객들보다는 현지인들이 오히려 많이 찾는다고 한다. 

 

 

자유 여행이거나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전망대 바로 아래에 위치한 이 레스토랑을 예약해서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해가 지는 시각에 맞춰 많은 손님들이 대기하는 모습. 어느 곳에서나 야경은 역시 여유롭게 식사를 하면서 즐기는 게 최고인 듯하다. (이 레스토랑은 그라나다 여행 필수 코스인지, 우리가 떠나는 시각까지도 예약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산니콜라스 전망대로 오르는 알바이신 지구 골목골목도 역시, 안달루시아 지방의 '하얀마을'에 속한다. 하얀 마을 중 가장 아름답다고 정평이 나 있는 곳은 스페인의 산토리니라 불리는 프리힐리아나(Frigiliana)로, 말라가에 위치해 있다. 지난 여행지인 론다 또한 하얀 마을 투어에서 빠지지 않는 핵심지이니 론다 여행 기록을 참조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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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채운 가옥들마다 발견할 수 있는 이슬람 양식의 아치와 타일들이 집집마다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어, 이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수고를 덜어준다. 흰 외벽만으로는 구별이 어려울 수 있으나 창틀과 타일의 색만큼은 굉장히 다채로웠다.

 

알바이신(Albayzín) 지구는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베리아 반도의 원주민인 이베리아인들에 의해 처음 세워졌으며 후에 로마인들의 정착지가 되었다고 한다. 로마 시대와 약 800년의 이슬람 통치기간 이전의 공백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꽤 오래도록 버려진 도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학자들은 이 도시의 이름의 어원을 '매 사냥꾼의 지역'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레콩키스타 이후 가톨릭으로 강제 개종된 이후에도, 이슬람 문화를 잃지 않고 고유의 향기를 간직해 온 그라나다. 좁은 골목은 그 세월에 비해 깨끗이 보존되어 있었고 주민들의 일상도 평화로워 보였다. 집시가 꽤 있는 지역이라고는 하나, 현재는 중산층 이상의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카르멘'이란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오페라 카르멘의 주인공, 집시 여인의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카르멘이란 말도 바로 그라나다에서 유래된 것이다. 무어 시대의 도시 레이아웃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알바이신 지구의 전통적인 가옥 구조를 바로 카르멘이라 칭한다. 카르멘은 마당의 작은 과수원이나 정원을 아주 높은 벽으로 둘러싼 독립형 가옥이다. 카르멘은 겉에서 보기에도 비밀스럽고, 또 아름답기 때문에 한때 여자아이의 이름으로 유행을 타기도 했다고 한다.

 

 

석양을 받아 점점 더 붉게 물드는 알함브라 궁전의 외벽. 알함브라는 '붉은 성'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라나다는 711년 경부터 8세기 가까이 스페인을 지배했던 이슬람 세력 중 나스르 왕국의 최후 거점지로, 가톨릭의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가 성공적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1492년까지 약 250년 동안 번영했다. 왕이 마지막으로 쫓겨난 문이 알함브라 궁전 어귀에 쓸쓸하게 남아있다. 비록 나스르 왕국은 물러났으나 그들이 남긴 아름다운 시가지는 이렇게 남아 전 세계의 유랑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만약 이미 해가 저물기 시작했을 때 산니콜라스 전망대를 찾는다면 이런 모습(세계인의 뒤통수...?) 밖에는 담아올 수 없을 것이다. 그라나다 여행에서 인생 사진을 남기고 싶다면, 낮 시간에 일찍 찾아가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는 그나마 먼저 자리를 뜬 미국 단체 관광객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맞바꾼 자리에 서서 잠시 알함브라 궁전의 모습을 방해받지 않고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지붕의 기와가 굉장히 낯익지 않은가? 굴뚝만 아니면 우리나라 소도시의 어느 산성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흰 일반 가옥들과 붉은 알함브라 궁전, 그리고 은은한 가을빛 지붕들이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낸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 고향의 모습을 그리다 세상을 떠난 많은 나스르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죽기 전 다시 한번 그라나다 여행을 했을까?

 

해가 완전히 지기까지는 일정상 기다릴 수 없어서 우리 일행은 천천히 걸어 내려가기로 했다. 이미 좋은 자리를 잡은 터라 아쉬웠지만 내려가는 도중에도 골목 사이로 알함브라 궁전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사실 그 모습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거의 모든 알바이신 지구 골목에 알함브라가 수놓인다. 알함브라 궁전 내부 투어는 다음 날로 예정되어 있어 이날은 전망대에서 그라나다의 야경을 감상하는 일정으로 마무리되었다.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알바이신의 골목을 누비는 것도 또 하나의 그라나다 여행 팁이 될 수 있다.

 

 

분위기 있는 타파스 집이 즐비하지만 단체석이 마련된 곳이 많지 않기 때문에, 누에바 광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위치한 큰 규모의 타파스 집으로 이동했다.  

 

아주아주 비좁은 골목. 사진에 집중하다 보면 턱에 걸려 넘어지거나 앞사람과 부딪힐 수 있으니 주의하자. 건물들이 하늘을 강물처럼 그려내는 알바이신 지구의 밤은 늦은 시각에도 활기가 가득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많이 생겨난 중동 음식 레스토랑 인테리어에서 볼 수 있는 이국적인 조명들로 가득한 기념품 가게가 인상적이다. 비슷한 제품들이 이스탄불 국제공항에도 많기 때문에 굳이 구매하지는 않았다.

 

 

많은 그라나다 여행객들과 시민들이 타파스와 함께 밤의 정취를 즐기고 있다. 하루에 5번씩 간단한 식사를 하는 스페인의 식문화 덕에 9시 이후에 본격적으로 저녁 장사를 하는 곳이 아주 많다. 다른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저녁 늦게까지 갈만한 곳이 많다는 점이 스페인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이기도 하다. 아침부터 바삐 움직인 탓에 허기가 진 우리 일행은 서둘러 자리를 찾아 앉았다.

 

역시 외관은 좀 미덥지 않은 음식들이 나왔지만 타파스 맛은 전반적으로 괜찮았다. 단, 하몽은 와인처럼 품질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기에 단체로 예약된 곳에서 대단한 맛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점은 참조할 필요가 있다. 깔라마리(오징어) 튀김이나 문어와 토마토를 버무린 요리가 딱 안주삼아 먹기 좋은 메뉴였다. 

 

내일 아침의 알함브라 궁전 투어를 기대하며, 차가운 샹그리아로 그라나다의 첫 밤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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