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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일들 Daily Life

레스케이프 호텔 (크리스마스 데이트 추천)

by 응댕이를쳐라옹 2019. 12. 19.

 

곧 죽어도 브랜딩 하나는 참 일관성 있게 신경 쓴다는 느낌을 주는 기업이 있다면 바로 신세계일 것이다. 작년에 신세계에서 야심 차게 선보인 19세기 프랑스 컨셉의 '레스케이프 호텔'에 얼마 전 다녀왔는데, 사실 11월 말 보다는 크리스마스 데이트에 더 어울리는 (부부이든 커플이든) 장소라는 생각이 들어 추천하게 되었다.

 

회현역 7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신세계 백화점 건물이 대각선으로 보이는데, 그 왼편 가파른 언덕배기로 어서 오르라는 레스케이프 호텔의 표지판이 보인다. 뒤편으로는 어렴풋이 남산타워가 보인다.

 

생각보다 가파른 언덕이라 휠체어를 타고 오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호텔에 오는 손님 대부분은 차로 이동을 할 테지만. 호텔 문 앞에 잠시 정차하면 발렛파킹 서비스를 해 준다. 1층은 체크인 프론트가 아니지만 안내를 하는 상주 직원 분들이 계셨고, 7층으로 올라가라고 안내를 받았다. 경호 역할도 하시는 분들 같았는데 굉장히 친절하고 젠틀했다.

 

뮤지컬 공연장에 입장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레스케이프 호텔 입구. 크리스마스 데이트 추천을 할 만한 화려함의 진수를 보여준다. 로비에 들어서면 바로 우측으로 계절마다 바뀌는 포토존이 있다. 눈을 표현한 소금 같은 알갱이들이 인상적이었다. (밟으면 사각사각한 게 은근 뽀득거리는 눈의 느낌이 난다.)

 

앤틱한 분위기의 복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뭔가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오래 기다려야 해서 조금 불편한 감이 있다. 엘리베이터 벽면도 프랑스 귀족을 그린 세밀한 펜화로 장식되어 있어 과연 레스케이프 호텔의 감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안내 멘트도 프랑스어로 나올 정도의 디테일이라니. 

 

7층에는 체크인 로비와 레스케이프 호텔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낸 방향제, 문구 등의 굿즈가 전시되어 있다. 같은 층에 와인을 마실 수 있는 라운지와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는 카페가 위치해 있어 동선에 큰 무리가 없었다.

 

프라이빗하게 꾸며진 프론트는 응접실에 초대받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다만 두 개의 데스크밖에 없어서 조금 대기를 해야 한다. 직원분들은 전반적으로 정말 친절하셨다. 키를 받고 객실로 올라가기까지도 혼잡도 높은 엘리베이터가 말썽이었지만.

 

우리가 배정받은 객실은 1111호. 온통 붉은 벽과 골드, 무채색이 조화를 이룬 공간의 느낌이 화양연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레스케이프 호텔에서 느꼈던 것은, 약간의 불편함이 있는 엘리베이터나 조식 인원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레스토랑의 단점을 차치하고서라도 룸, 로비, 각 층의 향기까지 신경 쓴 브랜드의 힘이었다. 불쾌한 요소가 있어도 그 불쾌함을 금세 상쇄시키는 묘한 분위기와 향기가 있었다.

 

레스케이프 호텔 객실 문을 열고 들어선 첫 느낌은, '유럽의 어느 우아한 겨울 별장'이었다. 소품들이 벨벳 느낌에 어두운 붉은 톤인 크림슨과 세이지 그린, 올리브 그린이 섞여 있어 봄이나 여름보다는 겨울의 결과 잘 맞는다. 크리스마스 데이트 추천 호텔로 제시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아한 침실 옆, 투숙 내내 우리의 선곡을 도와준 기가지니가 손님을 맞고 있다. '가사가 없는' 재즈를 가사가 있는 재즈와 구별하지는 못 했지만, 크리스마스 데이트 분위기를 물씬 낼 수 있었던 것도 다 기가지니 덕분이다.

 

어둡지만 정말 아늑한, 레스케이프 호텔 객실. 의외로 아주 화려한 디테일의 앤틱 가구는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나름 가구에서는 패턴 외에는 힘을 뺀 느낌이다. 

 

현관 옆 걸린 그림들도, 그냥 캔버스 프린팅이겠지 했는데 원화였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객실에 걸 그림을 원화로 공수했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하긴 신세계니까...) 자본주의가 생산 못할 물건이 어디 있으랴.

 

현대카드 호텔위크 패키지에 마지막 턱걸이로 신청을 한 터라 어떤 내용의 패키지인지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었는데, 이도도자기 찻잔 두 피스 세트와 7층 카페에서 주문할 수 있는 티 2잔, 마들렌 세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앙증맞은 현대카드 생수도 함께 들어있었다. (이 지독한 브랜드 장인들...)

 

어매니티도 수준급인데, 아뜰리에 코롱 제품 중 시트러스 향이 나는 종류였다. 손을 끼워 세안할 수 있는 클렌징 타월도 샤워실과 세면대, 욕조에 각각 놓여있어 굉장히 요긴하게 쓸 수 있었다. 향이 마음에 들어 남은 바디로션은 사무실에서도 쓰고 있다.

 

침실 바로 옆이 욕실인데 문 위가 일부 뚫려 있는 형태여서 뭔가 욕조를 쓰기에 부담스러운 감이 있었다. 1인용 욕조였던 점은 조금 아쉽다. 하지만 조명이 들어오는 화장 거울, 넉넉한 타월, 예쁜 칫솔 치약, 미끄럼 방지 패드 등 허투루 갖다 놓은 것이 없는 모습이 만족스러웠다.

 

미니바에 구비된 물품들도 하나하나 레스케이프 호텔 감성에 맞는 것들이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와인잔, 양주잔, 물 잔을 별도로 준비해 두었다는 점이었다. 의외로 더 좋은 호텔에서도 이런 부분을 신경 안 쓰는 곳들이 있다 보니, 어울리지 않는 잔에 준비한 술을 마셔야 하는 경우가 왕왕 있으니 말이다.

 

이 중 네스프레소 머신 캡슐 2개와 생수, 탄산음료 종류는 무료이고 병맥주도 8천 원 정도 선에서 마실 수 있어 좋았다. 와인은 근처 와인샵에서 구매해 와서 따로 미니바에 있는 바틀을 따지는 않았다.

 

짐을 풀고 차를 마시러 7층 '헬카페'에 내려가니 입구에 호두까기 인형을 앞세운 포토존이 있어 몇 장 사진을 남겨 보았다. 동굴 같은 느낌을 주는 아늑한 분위기였다.

 

자리를 안내받고 차 종류 중 원하는 메뉴를 두 잔 고를 수 있었는데, 우리는 둘 다 홍차 종류를 주문했다.

 

창 밖의 뷰는 그닥이었지만 아예 막혀 있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다. 이윽고 차와 마들렌이 준비되었다. 객실에서 언박싱한 이도도자기와 같은 찻잔에 서비스되었고, 막 구워진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마들렌 세 피스가 함께 구성되어 있었다. 다른 하나는 평균적인 맛이었고 얼그레이 프렌치 블루는 꽤나 괜찮았다. 

 

마들렌도 맛있고, 서빙도 훌륭하고 다 좋았는데 동굴처럼 휜 천장 모양 때문인지 뒷 테이블의 소리가 울려 가까이 들리는 점은 조금 힘들었다. 어느 모임의 육아 이야기를 한 시간 동안 강제로 듣는 자리가 될 줄이야...

 

호텔 카페치고 저렴한 편에 속하는 홀케이크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주문해서 픽업해가도 좋을 것 같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객실로 올라와 와인과 재즈를 즐기며 호캉스를 누렸다. 바로 근처에 편의점도 있고, 남대문 시장도 있다 보니 저녁도 먹고 산책도 나가고 밤늦게까지 왔다갔다 하면서 알차게 놀 수 있었다. 레스케이프 호텔 객실 내에서 최고의 장점을 꼽자면 침구이다. 침대와 베개가 보기보다 정말 편안해서 푹 쉴 수 있었다. 

 

레스케이프 호텔에서 크리스마스 데이트를 즐긴다면, 차라리 늦은 저녁이나 야식을 즐기며 밤 늦게까지 객실을 활용하는 편을 택하고 조식은 드시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차라리 잠을 한 시간 더 자는 편이 낫다. 좁은 대기 공간에 앉을자리도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수 있다.  

 

라망시크레 레스토랑 자체는 좁지 않으나, 조리 속도가 정말 느려서 자리를 안내받고서도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셀프바 음식 가짓수도 굉장히 적고, 오믈렛이나 팬케익 역시 그 정도로 기다려서 먹을만한 수준은 아니니 조식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결론적으로 아침 참새보다는 밤 올빼미 커플들에게 더욱 추천하는, 크리스마스 데이트 추천 장소 레스케이프 호텔이다. 5성급과 비교했을 때 조식과 수영장은 포기해야 하지만, 객실 옵션과 분위기만 놓고 본다면 4성급 중에서는 평타 이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침은 조식 대신 네스프레소 캡슐 커피로 깨우도록 하자.

참고로, 레이트 체크인도 1시간 정도 선에서 미리 프론트에 말씀 드리면 별도 요금을 받지 않고 배려해주시니 숙취가 심한 경우 참고하시기 바란다. 올 한 해도 모두 즐거운 크리스마스 데이트를 즐기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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