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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도 좋아, 가끔은 Travel Abroad

바르셀로나, 그 긴긴 여정

by 응댕이를쳐라옹 2019. 11. 28.

[스페인포르투갈패키지여행 #14] 그라나다에서 바르셀로나까지, 장장 10시간의 기행 (奇, 기이할 기)

 

스페인 최남단인 그라나다에서 바르셀로나까지는 무려 버스로 10시간이 소요된다. 10시간을 한 번에 가기는 체력적으로 무리가 있으므로 6시간을 달려 중간 즈음인 발렌시아에서 하루 묵고, 나머지 4시간을 달리는 일정이었다. (ㅎㄴ투어 나한테 왜 이래...?) 덕분에 이 여행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구경할 수 있었던 곳은 바로 스페인 휴게소들이었다. 휴게소라 해서 구경할 거리가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휴게소를 구경하고 싶어 여행을 나오는 사람이 있을까? 

 

여기서도 여행사의 꼼수가 드러나는데, 이렇게 10시간이나 버스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는 줄은 여행날 받은 안내서를 받고서야 알게 된 것이다. 체력적인 안배가 필요하다면 스페인 국내선을 운항하는 저가항공을 아무거나 이용해도 될 것을... (실제로 그라나다 이후에는 버스와 기사, 가이드마저 교체되었기 때문에 다른 교통편을 배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20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패키지였기 때문에 아쉬움이 컸다. 

 

4성급이라고 광고가 되어 있었지만, 3성급 수준의 4성급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100만 원 초반으로 엮인 패키지와 별반 다를 것 같지도 않다. 꼼꼼히 따져본다고 해도 실제 가보기 전까지는 숙소 수준이나 이동 방법, 이동에 걸리는 소요시간을 자세히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이것도 어떻게 보면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법적으로 규제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돈을 더 내면 좀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프리미엄 상품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와이너리에 들르는 일정과 5성급 숙소에 묵는다는 차이점을 내세우며 8백만 원에서 천만 원까지 책정된 것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그 정도의 비용이라면 차라리 크루즈 여행을 택하거나 개인 가이드를 붙이지 않겠는가?

 

발렌시아의 거리는 정말 고요했고, 숙소 주변으로 그렇다 할 산책 루트도 없었다. 정말 잠만 자기 위해 들른 곳. 골목 어귀에서 만난 길냥이가 발렌시아에서 만난 가장 반가운 행인이었다. 꽤 이른 시간에 숙소에 도착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주변을 돌아보려 했으나 (우리 말고 다른 팀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나도 삭막한 골목엔 그 흔한 편의점도 하나 없었다. 

 

야속한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깨어난 아침. 4시간을 달려 도착한 바르셀로나의 첫인상은 어쩐지 휑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카리아 해변을 둘러싼 이 구획 전체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기점으로 조성된 곳이라 스페인의 특징을 대변할 만한 건물이나 거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스페인의 태양빛을 머금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이 건물은 바로 물고기라는 뜻의 Peix. 프랭크 게리의 작품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그 명성을 공고히 한 스타 건축가이니 만큼, 스페인과 인연이 깊은 듯하다. 그의 걸작,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궁금하다면 아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https://mintviolet.tistory.com/4

 

빌바오(Bilbao)

[스페인포르투갈패키지여행 #2] 빌바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곧장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으로 향하는 길. 북부 도시에서 마주한 스페인의 첫인상은 의외로 차분하고 서늘했다. 독일이나 덴마크가 아닌가 싶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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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 이카리아 해변(Nova Icària)은 비치발리볼과 일광욕,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푸른 지중해를 눈에 담을 시간은 고작 10여 분이었다. 바닷물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바로 근처의 빠에야 식당으로 양떼몰이를 당하듯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화가 나는 대목이다.)

 

이카리아 해변을 감싼 콘크리트 블록 위로는 길고 긴 식당 골목이 있는데, 해변에 사람이 가득한데도 이쪽 식당에는 먼저 식사를 하고 있는 손님이 없었다. 조금 이른 시간이기는 해도, 한 두 테이블 정도는 있을 법도 한데 굉장히 넓은 홀에 사람이 없어 놀랐다. 

 

벽에 가득 걸린 빠에야 냄비와 해산물 수조에 약간 안심이 되기는 하였으나 우리 일행이 들어간 이후에 자리를 잡는 손님들도 역시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 뿐이었다. 덕분에 매우 시끄럽기도 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어디를 가나 함께했던 스페인식 기본 샐러드와 맥주, 오렌지맛 탄산음료가 먼저 나오고 한참을 기다렸다. 거의 20-30분 이상 기다렸던 기억. 드디어 기다렸던 빠에야가 나왔다. 

 

스페인 맥주는 살라망카, 세비야, 그라나다에 이어 바르셀로나 마저도 모든 지역의 맥주가 시종일관 맛이 없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함께 나온 빠에야는 영국 버로우 마켓에서 맛본 것이 훨씬 맛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수조는 왜 갖다 놓았는지 모를 일이다. (해산물이 전혀 싱싱하지 않았다.) 단체 관광객이라고 대충 오래된 재료를 썼을 수도 있겠지만, 왜 단체밖에 받을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이카리아 해변 근처의 식당들 역시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즈음에 생겨난 모양인데, 그렇다고 치고 백번 양보해도 27년 정도 했으면 맛집이 되고도 남을 시간이 아닌가? 자유여행으로 내가 선택해서 이 식당에 들어갔다면 더더욱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프랭크 게리의 물고기를 한번 더 흘깃, 훔쳐보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바로 람블라스 거리 근처로 이동 후 바르셀로나 구시내를 거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으로 향하기 위해서다. 

 

뭇 예술가들이 사랑해 마지않은 람블라스 거리. 바르셀로나의 명물 중 하나라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다만 점심이 너무나도 불만족스러웠던 탓에, 이 거리에서는 좀 만족스러운 후식을 찾아내고 싶었다. 고심 끝에 스페인이니 만큼 원조 츄러스를 먹어보자, 하고 한 츄러스 가게에 들러 세 조각을 샀다. 

 

매끄러운 초콜릿이 갓 튀겨낸 츄러스 위로 흘러내리며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냈다. 람블라스 거리를 걸으며 먹는 츄러스의 맛이란...(!!) 매우 짜다. 원조 츄러스는 이렇게 짠맛이구나, 깨달으며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 절반을 쓰레기통에 양보했다. (눈물)

 

람블라스 거리에서 바르셀로나의 하이라이트,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가는 길은 10분이 넘게 걸렸는데, 바르셀로나에서 10년 넘게 거주한 가이드조차 매우 긴장할 정도로 치안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거듭 강조하며 주의를 준 탓에 우리 일행 중에는 다행히 이 거리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케이스는 없었다. 건물 발코니 곳곳에는 카탈루냐의 독립을 외치는 깃발과 노란 리본이 걸려 있었다.

 

얼마 전 길에서 테러를 당한 한국 남학생의 경우, '마드리드'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가 봉변을 당했을 정도로 스페인 정부, 그리고 그 수도인 마드리드와의 지역감정이 굉장하다고 한다. 거의 우리나라와 일본의 케이스와 같이 감정의 골이 깊고 화합이 어려운 정도라고.

 

 

긴장감 넘치는 10분이 지나고,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첨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당 근처로 진입할수록 사람이 굉장히 많아지기 때문에 소매치기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오토바이 날치기를 당해 사망한 관광객도 있었다고 하니, 소매치기를 피하려 도로변으로 걷는 것 또한 조심하시길 바란다.

 

실제로 세비야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일화는 지난 글에 소개한 바 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바르셀로나 여행을 통해서도, 다시 스페인에 오게 된다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유명 유적지보다는 조용하게 작품 관람을 할 수 있는 미술관 투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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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여행 (스페인 소매치기)

[스페인포르투갈패키지여행 #9] 스페인 포르투갈 패키지여행 6일 차를 꽉 채운 세비야 여행. 단연 스페인 광장과 세비야 대성당이 세비야 여행의 하이라이트이다. 특히 세비야 대성당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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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도 미술관

[스페인포르투갈패키지여행 #4] *마드리드 데이투어 (1)- 프라도미술관, 마요르 광장, 산미구엘 시장 / (2)- 마드리드 왕궁, 푸에르타 델 솔 광장 부르고스의 감동을 뒤로하고, 2시간 반을 달려 마드리드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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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와 구엘공원, 바르셀로나 올림픽 경기장, 몬주익 언덕 등은 후속 글에서 다루겠지만, 이렇게나 멋진 문화유산들이 있음에도, 스페인의 치안 문제는 여행 내내 피로감을 증폭시키는 마이너스 요인임에 분명하다. 여행의 감동이 반감됨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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