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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의 미식리스트 Foodies List

서울 데이트코스 추천 - 연남

by 응댕이를쳐라옹 2019. 11. 7.

가성비도 좋은데 음식도 너무나 훌륭한 파스타 & 와인 집을 찾아 행복했던 지난 월요일. 원래는 합정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버스 시간 때문에 애매해져서 이동이 용이한 홍대입구 역에서 남자 친구를 만났다. 

 

연남에는 웬만한 서울 데이트코스 추천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우리의 아지트, 진화로가 있지만 이날은 맥주나 사케보다는 와인을 마시고 싶어서 좀 더 먼 길로 나가보았다. 그중 이 골목이 왠지 정감이 가서 여기에 있는 가게들 중 하나를 가볼 생각으로 이곳저곳의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서울 데이트코스 추천이 아니라 어느 한적한 일본 어느 소도시 데이트코스 추천 목록에 있을 것만 같은 작은 식당부터 뉴욕에서 건너온 것 같은 깔끔한 베지테리언 메뉴가 돋보이는 샐러드 집도 있었는데,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바로 반지하에 위치한 이 레스토랑의 외양이었다. 

 

바람이 차가워지면서 맥주보다는 와인에 더 꽂혀 있는 우리 커플을 저격하는 와인 트리 옆으로. 붉은 조명이 돋보이는 레스토랑이 보였다. 메뉴판을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가장 가까운 전면을 주방에 할애한 것만 보아도 조리 과정에 자신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끌리듯 들어가게 되었다.

 

소중한 주차장을 쿨하게 내다 버린 익스테리어가 마음에 든다. 가게 안에서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메뉴판이 벤치에 비치되어 있다. 평소 대기가 조금 있는 편인가 보다 생각했다. 

 

사실 이 입간판을 보고는 좀 망설이기도 했는데, 1만 원대 초반에 불과한 파스타가 과연 맛이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기 때문. 이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이 밝혀지는 데는 불과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캐주얼 비스트로'라 소개하고 있지만 맛은 전혀 캐주얼하지 않다! (뜬금 스포?) 제대로 갖춰진 격식 있는 맛을 자랑하는 이곳의 이름은 바로 '연남동 질리'. 맘 같아선 숨겨 두고 싶은 맛집이지만 이미 서울 데이트코스로 정평이 난 것인지 우리가 들어가자마자 만석이었다. 

 

자 이제부터 내 맘대로 서울 데이트코스 추천 1순위, 연남동 질리의 맛의 세계로 초대한다. 자리가 없어 계산대 바로 앞 바 자리에 앉았는데, 소품들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주인장의 일관된 취향이 드러나는 소품의 조합!) 왠지 이웃집 토토로 피규어도 집에 있으실 것만 같다.

 

어떤 가게이든 기업이든 외관이 멋진가 촌스러운가 그런 것들을 떠나, 오너의 고집이 드러나는 곳이 좋다. 그런 곳이 서울 데이트코스로 추천할 만한 맛집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주문이 밀려 있어 꽤 기다리기는 하였지만 아주 긴 시간은 아니었다.

 

 

화력 좋은 스토브와 불을 잘 쓰는 셰프의 만남 = 맛집

이 공식은 어딜 가나 틀림이 없다. 바 좌석에 앉았을 때의 가장 좋은 점은 조리 과정을 가감 없이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질 페스토를 소분해 둔 통부터, 그것을 매 회 냉장고에 넣었다 뺐다 수 없이 반복하는 모습에, '아, 이번에도 세심한 셰프를 만났구나'하는 생각에 절로 기대감이 솟았다.

 

캐주얼 다이닝을 표방하는 만큼, 메뉴는 복잡하지 않다. 메인 파스타 메뉴와 와인, 그리고 적당한 안주거리와 맥주가 준비되어 있었다. 가짓수가 적지만 우리 커플의 취향을 저격하는 메뉴가 너무 많아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바질 파스타 & 대구 튀김과 로제 파스타 & 닭다리살 구이를 주문했다. 나는 해산물 마니아, 남자 친구는 닭고기 마니아이기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ㅎㅎ)

 

 

기본으로 제공하는 물에도 로즈마리를 띄워 향긋하게 만들어 주는 센스. 과연 서울 데이트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이날은 스파클링이나 레드 와인보다는 화이트 와인이 어울릴 것 같아서 아일랜드 이스터 쇼비뇽 블랑을 주문했다. 아일랜드 이스터 멜롯과 더불어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만찬주였다고. 

 

시트러스 향이 주를 이루는데도 튀지 않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 화이트 와인이었다. 역시 파스타가 나오기 전에 절반쯤 마셔 버린 우리는... 술고래 커플? 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집도 사고 와인 냉장고도 두고, 그렇게 살고 싶다. (언제...?)

 

풀잎색이 청아한 아일랜드 이스터 쇼비뇽 블랑. 우리가 앉은 뒤로도 손님이 많이 와서 대기를 하거나 포기하고 돌아가는 분들도 있었다. 안쪽 테이블 몇 군데와 바 자리 각각 두세 팀이 앉으면 꽉 차는 구조여서 세 명부터는 버겁고 네 명 이상은 미리 문의를 해야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곧 데이트 장소로 최적이라는 것!

 

너무 배가 고파서 앞에 놓인 소품을(보는 척하며 셰프님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와중. 손님이 많은데 사장님은 두 분뿐이라, 정말 바쁘게 손을 놀리는 모습이 베테랑의 포스를 풍겼다.

 

아까 밖에서 본 그 창문. 밖에서는 붉은빛이 먼저 보이는데, 안쪽은 꽤 밝은 편이다. (사실 배고파서 찍은 사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린 바질 파스타가 나왔다!! 굵직한 새우와 토실한 대구살의 자태를 보니 흥분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연녹색의 바질 소스는 맛보기 전부터도 이미 코로 한 접시를 다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은 향을 풍겼다. 

 

바질과 바질 페스토를 정말 좋아해서 떨어지는 족족 집에다 쟁여 두고 먹는 나인데, 이 맛은 정말 바질 페스토로 낼 수 있는 최적의 밸런스였다. 크림을 약간 섞은 것 같은데, 마지막 한입까지 전혀 질리지 않아 소스까지 싹싹 비워냈다. 집에서 바질 페스토 파스타를 하면 이것보다 훨씬 강한 맛이 되어서 혀에서 물리곤 했는데, 그런 맛이 전혀 아니었다.

 

특히 이 두툼한 대구살은 상상 이상으로 부드러워서, 씹는 순간 용해된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겉면이 바삭한 것은 물론이다. 바질 소스와 찰떡궁합인 이 대구 튀김은 튀김이라고 하기엔 너무 고급스러워서 '올리브 오일로 바짝 구운 대구 스테이크' 혹은 '대구 소테(Sauté)'라고 써 두어도 좋을 것 같았다. 생선 애호가가 아닌 남자 친구도 한입 베어 물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남자 친구가 주문한 로제 파스타와 닭다리살 구이도 곧이어 나왔는데, 우리를 정말 깜짝 놀라게 한 점이 있다. 바로 닭다리살의 모습이었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닭다리 봉이나 넓적다리 형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유명 닭갈비 집에서나 볼 수 있는 닭다리 살을 돌려 깎은 그 닭갈비 부위! 저렇게 자른 닭다리 살은 같은 닭이어도 구웠을 때 정말 극강의 풍미를 낸다! (남자 친구의 본가가 해당 부위를 다루는 꽤 유명한 맛집이어서, 본의 아니게 잘 알고 있다.) 

 

이건 연남동 질리의 셰프님이 정말 신경 써서 재료를 준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싸구려 닭다리 식재료가 얼마나 흔한지, 장사를 준비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기에. 역시 불맛으로 구워내어 부드러웠고 훈연의 향도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

 

게다가 수제 피클 안에는 양파뿐만 아니라 비싼 양송이버섯과 통 올리브까지 듬뿍 들어있었다. (슬라이스가 아니고 통 올리브??? 새송이 조각이 아니고 양송이???) 

 

너무 감동받아서 와인을 한 병 더 시킬까 했는데, 와인 종류는 사실 많이 구비되어 있지 않아 고민 끝에 안주 메뉴와 맥주를 더 시키기로 했다. 루꼴라와 토마토, 마늘 크림소스를 곁들인 닭다리살 구이. 배가 부르지 않았다면 다른 리조또 메뉴를 맛보고도 싶었는데, 그건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맥주는 기본형으로, 버드와이저를 시켰다. 산미구엘이나 에일류를 좋아하지 않아서, 흑맥주 종류가 한 가지만 추가되면 더 좋을 것 같다. 주류를 즐기다 보면 중간중간 화장실에 가야 할 경우도 많이 생기는데, 연남동 질리는 내부에 아주 깨끗한 화장실을 갖추고 있어서 반지하여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특유의 지하실 냄새도 전혀 나지 않는다. 

 

식사 메뉴 세 개에 와인 한 병과 맥주 두병까지 즐긴 완벽한 식사였는데도, 계산서의 총합이 73,000원이었다. 시판가보다 저렴하게 와인을 제공해주셔서 이 가격이 가능한 것 같다. 술을 마시지 않고 메뉴 두 개만 시킨다면 2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데이트를 해결할 수도 있다! 정말 혜자 선생님이 울고 가실 서울 데이트코스 추천 맛집이다.

뭐라고 감사의 한 마디를 건네고 싶었는데 두 분 사장님이 계산하기까지 너무 조용하신 데다 바빠서 별다른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나왔다.

(연남동 질리 사장님, 번창하시고 제발 만원씩 올려 받으세요! 너무 맛있습니다...ㅜㅠ)   

 

행복한 식사를 마친 우리 커플은 경의선 숲길을 지나 연희동까지 산책하며, 평일 저녁의 막간 서울 데이트를 마무리했다. 노력과 실력에 비해 보상을 못 받고 있는 분들을 보면, 더욱 잘 되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진다. 모두 모두 노력한 만큼 행복해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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