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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의 미식리스트 Foodies List

스시 오마카세 (마곡)

by 응댕이를쳐라옹 2019. 11. 5.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육해공의 다양한 식재료와 방대한 향미를 머릿속에 그리고 그리다 끝끝내 선택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이다. 날 것의 상태로 조리된 해산물을 가장 선호하는 나로서는 제대로 된 횟집 한 곳, 스시집 한 곳을 만나는 것이 웬만한 당첨 소식보다 즐겁다. 하필 그곳이 재야의 스시 오마카세 고수가 차린 집이라면? 거의 연금 복권에 당첨된 것과 진배없는 행복감을 느낀다. (계속 갈 거니까?!)

 

 

거대한 LG사옥 단지가 들어서면서 이제는 제법 많은 상가들이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마곡 단지. 온갖 유명하다는 프랜차이즈들은 죄다 마곡에다 분점을 낸 것으로 보였다. 이 건물도 토끼정이 있는 건물이었는데, 도저히 당기는 음식이 없어 30분째 거리를 헤매던 시점에 지나가게 된 것이다. 어두운 주차장 옆에 위치한 스시 이이고또는 이렇다 할 이목을 끄는 간판이나 설명이 없어 처음엔 지나칠 뻔도 했다.

 

 

 

마곡에 있는 대부분의 식당이 그렇듯, 모든 것이 아주 새것 같은 가게 내부. 한 커플이 스시바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셰프님이 마침 재료를 준비하려 앉으신 사이에 스시바 사진을 하나 남겼다. 아주 정갈한 내부, 그리고 정갈한 메뉴판.

우리는 지체 없이 오마카세를 주문했다.

 

 

스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오마카세는 '맡긴다'는 뜻으로, 그날그날 재료의 신선도, 셰프의 의중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구성되는 스시 코스를 말한다. 요즘은 스시 외에도 한우 오마카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오마카세가 널리 자리 잡고 있다. 오마카세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그 가게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종종 영겁의 세월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첫 전채 요리를 기다리는 이 순간. 잘 알지 못하는 가게에 간 경우에는 '셰프님 (제발) 잘 부탁드립니다.'하고 속으로 빌게 된다. 정말 형편없는 스시 오마카세를 강남에서 먹어 본 기억이 있어, 과연 55,000원이라는 스시 오마카세 치고는 너무나 저렴한 가격으로 어떤 구성이 가능할지 궁금해졌다.

 

 

 

스시 이이고또  '스시 오마카세' 구성표

(55,000원)

 


 

1. 자왕무시 (일본식 계란찜)

 

 

먼저 스시 오마카세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자왕무시. 기포가 없고 푸딩처럼 부드러운 것이 특징인데, 약간의 기포는 애교로 넘어가 주자! 위에 곡물로 된 토핑을 뿌려주셨는데, 보기에는 예쁘지만 식감이 다소 눅눅하고 딱딱한 편이어서 아쉬웠다. 바삭한 식감이면 오히려 좋았을 것 같은 느낌. 어쨌든 너무나 배가 고픈 상태로 들어갔기 때문에 실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2. 고노와다에 무친 광어 2 pcs / 고등어회, 방어회, 도미회 1 pcs

 

 

가끔 유명 이자카야에서 고노와다(해삼 내장)를 시키면 선도가 낮아 굉장히 역한 상태로 나온 적이 왕왕 있었다. 스시 이이고또에서 맛본 첫 스시가 고노와다에 무친 광어라는 건 그만큼 대중의 호불호를 능가할 수 있는 자신이 있다는 의미 같았다. 오마카세라면 첫 접시가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고 과시하는 느낌이랄까. 너무나 신선해 달큼한 맛 마저 느껴지는 고노와다 광어에 첫 입에 반해 버렸다.

 

 

 

숙성되어 나온 고등어회 또한 전혀 비린 맛없이 끝 맛이 깔끔하게 떨어졌다. 고소한 맛 3중주로 부드러움과 탱글한 정도를 1,2,3 단계로 맞춰 나온 것. 셰프의 세심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라 절로 미소가 나왔다.

 

 

3.  첫 번째 스시 5pcs (활어 5종) 

 

 

대망의 스시 5종 첫 접시. 흰 살 생선 활어를 중심으로 광어, 참돔, 자리돔, 방어까지 각기 다른 생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5종 첫 번째에서 세 번째 접시까지 활어, 선어, 기타 해산물류로 나눈 것은 편의상 필자가 분류한 것이며, 모든 피스가 반드시 그에 해당한다는 말은 아니다. 역시 경도에 따른 식감의 순서를 조화롭게 배치해 놓았다. 한 접시 안에서도 끝자리로 갈수록 부드럽다. 

 

 

생선의 질이 좋지 않으면 자칫 아무 맛도 안 날 수 있는 흰살 생선 초밥인데도 맛이 정말 훌륭하여 밑면을 보니 스시 이이고또만의 비법으로 양념된 밥이 보였다. 예전에 명동 김밥 맛집 명화당의 김밥도 이런 노란빛의 양념을 했었는데, 같은 스승이 계셨던 것일까? 간장의 맛은 아니고 식초로만 빛깔을 낸 것으로 보인다.

 

 

4. 백합 조개탕

 

 

백합 조개탕이라기보다는 일본 가정식에 나올 법한 조개가 들어간 수프 같은 느낌인데, 약간의 버터향이 나면서 국물이 굉장히 부드럽게 넘어간다. 시원함보다는 서구적인 풍미가 있는 맛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조개 수프에 생선구이를 곁들여 아침으로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메뉴 하나만으로도 독창적인 가정식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5. 가이세키 (성게알, 참치 등)

 

 

일본 료칸의 가이세키 코스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아주 작은 양의 성게알(우니), 참치, 계란을 앞서 초밥에 들어간 특유의 양념된 밥에 비벼 두꺼운 김에 싸 먹을 수 있도록 한 덮밥 형태의 요리가 나왔다. 김의 효과 때문에 대마끼를 먹는 느낌도 난다. 적은 양이지만 우니가 정말 신선해서 강렬한 존재감을 뽐냈다.

 

 

 

 

 

6. 두 번째 스시 5pcs (선어 5종) 

 

 

두 번째 스시 5종은 풍미가 강렬한 붉은 살 생선 선어 위주로 고소한 맛이 절정을 이루는 접시였다. 참치, 청어, 고등어, 삼치, 참치 대뱃살까지. 비싼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못 내놓는 어벤저스급 숙성회였다. 참치 뱃살의 풍요로운 맛이야 익히 알고 있는 것이지만, 청어와 고등어를 이렇게나 비린 향 없이 깔끔한 고소함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름다운 고등어 스시의 단면!

 

 

7. 갑오징어 데침

 

 

다음은 먹물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갑오징어 데침이다. 먹물의 리치한 맛이 부드러운 갑오징어와 함께 씹히면서 풍미를 더한다. 스시 오마카세는 물론, 먹물을 처음 먹는 남자 친구는 조금 비우기 어려워했던 접시. 

 

 

8. 세 번째 스시 5pcs (기타 해산물 5종)

 

 

세 번째 스시 5종은 가리비, 단새우와 성게알, 전복, 장어, 새우튀김 게살 김밥, 계란말이 초밥이 나왔다. 아까 선도가 최상인 우니의 존재감에 대해 언급했는데, 단새우와 이 성게알의 조합이 정말 끝내준다. 전복의 맛이 가려질 정도. 앞선 가리비와 단새우, 전복, 장어가 절정의 화려한 맛을 자랑했다면 끝부분의 김밥과 계란은 이 입 속의 대환장 파티를 차분하게 정돈해주는 쿨다운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에서 파는 새끼 전복이 아닌, 진짜 탱글탱글한 대왕 전복!

 

 

9. 우동

 

앞선 세 번째 접시에 포함된 김밥과 계란에서 이미 느껴졌던, 대단원의 마무리를 하는 시간. 처음에는 초밥이 매우 작게 느껴져서 후반부에 있을 쿠키 영상을 기대했으나 우동이 나오기 전 이미 너무 배가 불러서 튀김 같은 추가 요리가 나와도 못 먹었을 것 같다. 배가 부른데도 우동 면발이 너무나 쫄깃한 나머지 마저 흡입해 버리고 말았다. 

 

 

10. 파인애플 샤벳

 

 

정말 별 것 아니어 보이는 접시지만 파인애플 알갱이가 미세하게 씹히면서 (이 사이에 낄 수 없는 정도의 크기로, 부드러우면서도 아직은 파인애플임을 증명하는 알갱이!) 입 안에 남은 바다 내음을 싹 거두어 가는 마법 같은 디저트다. 웬만한 아이스크림이나 매실차로는 이 샤벳을 이길 재간이 없을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스시를 즐기고 나니 그날의 저녁이 꽉 채워진 기분이었다. 나오면서 남자 친구가 이야기하기를, 셰프님이 굉장히 분주하게 우리가 먹는 속도를 체크하고 눈빛으로 직원에게 끊임없이 지시(자, 지금이야!)를 했다고. 역시 좋은 음식은 세심한 세프에게서 나오는 것인가 보다.

 

 

마곡 어딘가를 배회하다 혹시 이런 가게를 마주치거든 꼭, 반드시, 그 로또를 놓치지 마시라고 권고하고 싶은 최고의 스시 오마카세 맛집이었다. 십만 원으로 올라도 또 가고 싶은 맛집을 우연히 찾게 되다니, 정말 기쁘기 그지없는 날이다. (올레!)

 

 

스시이이고또

서울 강서구 마곡동로 55 마커스빌딩 1층 101호 (우)07802

02-2084-7036 

 

 

*본 포스팅은 고독한 미식 집사와 그의 남자 친구가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직접 비용을 지불한 곳들 중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만을 선별하여 작성한 것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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