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토요일 낮, 맥주 한잔이 생각나 이태원으로 향했다. 이태원클라쓰 촬영장, 단밤 1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자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태원클라쓰 속 단밤을 보러 나온 건 아니었지만 근처에서 목을 축일 곳을 찾다가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던 차였다. 이태원클라쓰 앞부분을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촬영장을 찾아 모여드는 한류 드라마로 벌써 등극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단밤 바로 옆, GS25가 1층에 자리한 건물 2층에 '이태원 맥주집'이라는 초록 네온 간판이 선연히 보여 지체 없이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걸은 후라 진짜진짜 목이 마른 상태였기 때문. 익스테리어에서 예상했던, 탁 트인 창문은 안쪽에서 봐도 근사했다. 바로 생맥 한 잔을 시켜두고, 사진을 더 찍기 시작했다.
녹사평역과 이태원 초입이 시원하게 보이는 이곳은 2층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넓다. 해가 저물어 갈 즈음까지 머물다 나왔는데, 야경도 꽤 훌륭한 이태원 맥주집이었다.
이태원 맥주집은, 내가 좋아하는 스트릿 패션 브랜드 수프림이 감각적으로 재해석한 명화와 센스 있는 현수막들로 자칫 너무 무거워 보일 수 있는 차분한 인테리어에 산뜻하게 틈을 주었다. 샹들리에와 등, 동양화와 서양화를 믹스 매치한 포인트들이 인상 깊다.
이태원 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내내, 이태원클라쓰 단밤 1호 촬영장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행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저녁 시간이 될수록 더욱 많아졌다.
탄산 충만한 테라 생맥주(5,000원)에 시원한 바깥바람을 쐬며 창밖을 감상하고 있자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테라의 고소한 맛은 역시 생맥주로 즐겨야 한다. 테라 외에는 레드락 생맥주가 구비되어 있고 다른 맥주는 병맥이다. 하이볼이나 와인 등 가짓수는 적어도 주종이 여러 개라 고르는 맛이 있는 이태원 맥주집. 오래 기다리지 않아 첫 번째 안주가 나왔다.
만원에 불과한 멕시칸 핫윙. 푸짐한 윙봉은 물론, 느끼하거나 달지 않으면서 계속 집어들게 만드는 소스와 샐러리까지 곁들여 나왔다. 이미 배가 부른 상태여서 기대하지 않고 들어간 이태원 맥주집에서 이런 고퀄리티 안주를 만날 줄 상상도 못 했다. 허브 향이 촉촉이 배어 있어 서빙된 팬의 온기가 가시기도 전에 순삭 해버렸다.
눈빛 교환을 한 남자 친구와 나. 하나 딱 맛보면 안다. 이런 집에선 배가 불러도 다른 메뉴를 시켜봐야 남는 것이다! 메뉴판을 유심히 보다가, 맥주 안주로 제격인 오징어 새우튀김(18,000원)을 주문했다.
와, 전용 소스에 레몬과 와사비, 고슬고슬한 쪽파까지 완벽한 일식 튀김이었다. 튀김옷이 거칠지가 않다. 그냥 노가리 포차 같은 곳에서 나오는 분식 같은 오징어 튀김이어도 이런 뷰를 가진 곳이면 만족하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최근 먹어 본 튀김 중 단연 최고였다. 새우도 탱글탱글하고 알이 굵은 진짜 새우다운 새우였다.
점심을 먹고 온 것이 후회될 정도로, 맛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와인의 경우 글라스로만 팔고 병으로는 판매하지 않는다는 점 정도? 메뉴 가짓수는 적지만 하나하나 제대로 힘주어 운영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가 실제로 가게를 운영한다면 이렇게 하지 않을까?
이른 시간에 방문한 터라 직원 분들이 식사 중이셨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일어나 세팅해주시고, 빠르게 서빙해주셔서 감사했다. 이태원에서 가 본 맥주집 중 최고의 맛과 가성비였다. 거기에 뷰까지. 전에는 이태원에서 뭘 먹어도 그렇게 맛있다는 느낌을 못 받았었고 맛있었던 경우는 강남과 비교해도 터무니없이 비싼 집들이었는데 이태원 맥주집에서 그야말로 이태원 클라쓰를 느껴버렸다.
행복한 생일의 마무리를 할 수 있게 해 준 이태원 맥주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남긴다.
이 글은 애주가 집사와 그의 남자 친구의 자비로 진행한 순정 리뷰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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