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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도 좋아, 가끔은 Travel Abroad

몬세라트 수도원 (Monasterio de Montserrat)

by 응댕이를쳐라옹 2019. 12. 21.

[스페인포르투갈패키지여행 #18] 기암절벽 위의 몬세라트 수도원과 검은 성모 

 

열흘에 걸친 이번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의 대미를 장식한 몬세라트 수도원. 무려 880년에 이곳에서 신비한 징조를 목격한 아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 11세기에 세워진 몬세라트 수도원은 지금까지도 카탈루냐 지역 사람들의 신앙의 터전이자 일상을 위로하는 안식처로 자리하고 있다.  

 

바르셀로나가 낳은 거장, 가우디 역시 이곳에서 어린 시절 영감을 받았으며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그 영감을 반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 모셔진 검은 성모상은 '흑인 성모'라고도 불렸는데, 검은 외관으로 인한 것이다. 전해지는 말로는 누가복음을 집필한 저자 누가가 조각한 것을 사도 베드로가 스페인으로 가져왔다고 하는데, 실상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톱으로 썬 산'이라는 뜻의 몬세라트가 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루는 이곳. 절이나 성당이나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 같다. 거대한 자연이 주는 경외심과 고요한 평안 또한 오롯이 내 마음, 혹은 신에 집중하는 데 중요한 자원이 될 테니 말이다. 

 

협곡을 가로지르는 강과 깎아지른 절벽이 장관을 이룬 모습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지금처럼 케이블카나 산악열차가 세워지기 전에는 이곳에 닿기까지 얼마나 험한 길을 걸어야만 했을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물과 전기는 어떻게 끌어오고 있는 걸까, 별 생각이 다 들게하는 몬세라트의 바깥 풍경은 이곳에 온 본 목적을 잊게 하기 충분하다.

 

절경을 뒤로하고, 수도원 건물로 향한다. 아무래도 바르셀로나에서 1시간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다보니 방문객 중에는 가톨릭 신자의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보였다. 대부분의 스페인 국왕들은 물론, 프랑스 루이 14세, 오스트리아 페르난도 3세 등도 다녀간 순례지라고 하니 유럽의 가톨릭 신자들이 많이 찾을 만도 하다. 그 외, 괴테와 바그너와 같은 세기의 예술가들도 다녀갔다고 한다.

 

아무리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신비한 돌들의 모습. 거인들이 늘어선 모습 같기도 하다.

 

스위스 산자락의 아담한 호스텔처럼 보이기도 하는 소박한 몬세라트 수도원 건물 외관. 안쪽으로 들어가면 의외로 화려한 경관이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내부에 조각된 성인들의 모습은 전통적인 르네상스 양식의 것들도 있었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보았던 현대적이고 추상적인 모습들도 볼 수 있었다. 

 

검은 성모상이 모셔져 있는 제단 위쪽 방은 성모상의 오른손을 직접 만지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1층 예배당에서 잠시 평온함을 누리는 것으로 만족을 느꼈다. 

 

짧은 기도를 마친 후, 같은 모양으로 제작된 것이 하나도 없는 등과 스테인드글라스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오전 일정이 몬세라트 수도원뿐이었기에 비교적 시간이 여유로운 편이었다. 수도원 아래쪽으로 성물이나 묵주 등을 파는 기념품점이 굉장히 잘 되어 있었고, 푸드코트도 있어 커피 한 잔도 즐기고 예쁜 묵주 팔찌도 5유로 정도에 구매했다.

 

뭐라 표현할 말은 없지만, 실제로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던 몬세라트 수도원. 순례자이든 아니든, 누구라도 신 앞에, 또 나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밖에 없는 공간임에는 분명하다.

 

거대한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조용히 기념 사진을 남기는 몬세라트 수도원의 순례자들. 지금은 각기 소원하는 바를 이뤄가고 있기를.

 

노란 케이블카를 타고 낮은 곳으로 내려오는 길. 이제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의 일정은 모두 끝났지만 또 한바탕 달릴 수 있는 힘을 얻어 가는 것 같다. 몬세라트의 거대한 절벽을 잠시간 수놓은 노란 점이 될 수 있어 즐거웠던 여행 마지막 날. 이후 한국에선 거대한 액땜이 날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또한 이겨낸 지금으로서는 감회가 새롭다. 

 

여행이나 일이나, 또 일상에서의 삶이나,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어떠한 당황스러운 일이 생겨도 극복할 수 있는 내성을 기르는 과정인 것 같다. 힘들고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유럽 땅을 밟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한 챕터를 살아 낼 통찰을 얻은 것이라 위안을 삼으며 아쉬웠던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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